영화

<영화 리뷰> 자산어보

마스콩 2021. 4. 26. 23:10

자산어보(茲山魚譜)

 


자산 정약전?

'자산'은 '다산 정약용'처럼 정약전의 호?
옛날으로 치면 ‘까막눈에 언문만 할 줄아는 정도’인 저는 ‘주인공인 정약전의 호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산’은 영화의 배경이되는 ‘흑산’도 다른 이름입니다. 목포의 남서쪽에 위치한 이 흑산도(黑山島)에 유배 온 정약전은 집에 편지를 쓸 때 가족에게 어둡고 음침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이 섬을 ‘자산(茲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검을흑(黑)은 먹처럼 단순히 검은 것을, 검을현(玄)/자(茲)는 검지만 여러가지 색이 섞여 검게 보이거나 흐린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까맣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성리학, 천주교, 실학의 그 어딘가

 조선시대 정조때 '실학의 선구자'로 유명한 정약용의 형 정약전(丁若銓)은 병조좌랑을 지내며 정조의 신임을 받습니다. 그는 일찍이 천주교와 서학을 받아 들였습니다. 당시 임금이였던 정조도 성리학에 입각한 군주였지만 천주교도인 정약용과 정약전 등을 요직에 등용한 점으로 보아 능력 위주의 인사 정책을 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천주교나 서학에 대하여 온건한 정책을 폈던 정조가 죽고, 순조 1년 당시 권력을 잡았던 벽파 세력은 천주교도를 탄압하는 신유박해(辛酉迫害)라는 사건을 일으키게됩니다. 천주교도였던 정약전의 형제들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첫째 정약형은 순교, 둘째와 막내인 약전과 약용은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한때 임금에게 신임을 받으며 입신양명했던 인물이 조선의 끝보다 더 끝인 '흑산도'라는 곳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나라에 대한 실망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섬사람들과의 인연을 맺으며 제자를 가르치고, 섬의 어류에 대하여 직접 관찰하여 기록한 책, '자산어보(茲山魚譜)'를 남기게 됩니다.

영화는 자산어보 편찬에 도움을 주었다고 기록되어있는 '창대'라는 인물과 주인공 약전의 이야기 입니다.

왜 정약전(丁若銓)인가?

 기존의 미디어를 통해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생인 정약용의 경우 지방관 등 관리의 덕목을 기록한 '목민심서(牧民心書)'나 국정에 대한 법규의 개혁등을 다루었던 '경세유표(經世遺表)'라는 책들을 저술했고, 이는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인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항상 가까이 했다'라는 풍문을 만들어 낼정도로 유명합니다. 그에 반해 물고기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이 '자산어보'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고 당시 세간의 트렌드와는 관련성이 적어 보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하여 파고 들며,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이 책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펼쳐 보입니다.

 

지식교환 친구 만들기

 창대는 흑산도의 젊은 어부로,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홀로 어려운 글공부도 마지 않는 그는 천주교에 빠져 성리학의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서학의 무리인 약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평범한 아낙을 비롯하여 지방의 관리도 꼼짝 못하는, 한때는 잘나갔던 약전을 보기좋게 무시합니다. 흑산의 생태, 특히 어류에 관심이 많았던 약전은 창대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창대는 쌀쌀맞기만 합니다. 그가 글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공부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어류에 대하여 기록할 수 있도록 '딜'을 청합니다. 일단은 약전도 조정에서 한자리 했던 성리학자, 젊고 뛰어난 의욕있는 제자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였죠. 창대는 물고기에 대하여는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니 이를 기록하고자 했던 약전에게는 소중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 유쾌한 거래는 창대로 하여금 약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창대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기 전까지는말이죠.

 

벽파vs약전, 목민심서vs자산어보
 배경이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 흑산도의 모습과는 다르게, 영화는 점차적으로 여러가지 치열하며 대립적인 모습을 조명합니다.
권력을 움켜쥐고 국정을 독점하는 벽파의 모습과 정조의 치세 아래에서는 요직을 담당했었던 주인공이지만 조정이 바뀐 이후 내쳐진 약전의 모습, 나라를 통치하는 지배세력으로서 각지를 관리하는 지방관의 지침서인 ‘목민심서’의 내용과 유배지의 어류를 관찰하여 기록한 ‘자산어보’의 내용은 비슷하게 대비되어 있습니다.
하찮아 보이지만 가치있고, 비루해보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자산어보를 통해 비춰줍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vs안분지족(安分知足)
 창대는 약전을 통해 배웠던 성리학을 토대로 입신양명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하지만 세상에 만연했던 부조리를 직면하여 낙심하고 안분지족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시대의 문제점을 표현한 내용이었지만 영화 ‘광해’에서 지적한 ‘지배층들의 편협한 국제정세에 대한 시각’이나 ‘사도’에서 비춰진 ‘권력 유지를 위한 존속 살해’ 등의 모습처럼 무거운 주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피로함을 갖게 합니다. 어보의 탄생과정에 집중했다면 좋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접하는 흑백영화
어렸을 적, '사무라이 픽션'이라는 영화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았습니다. 이전에도 영화에서 흑백으로 연출된 부분을 본적이있었기 때문에, 영화 초반부를 지나면서 컬러로 연출 될 줄 알았습니다만, 끝까지 흑백 연출이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영화의 흡입력은 매우 강력했던 기억이있습니다.

최근에는 아내와 함께 영화 매드맥스를 다시 봤는데, 애플 티비로 시청했기 때문에 새로운 버전(블랙 앤 크롬 에디션)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컨텐츠는 추가비용 없이 4K, HDR 또는 추가 버젼의 컨텐츠를 감상 할 수 있습니다.) 굳이 흥행 했던 영화에 대해서 감독의 의지로, 흑백 영화 버젼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흑백의 의미' 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블랙 앤 크롬 에디션으로 시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선명하고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컨텐츠(4K, HDR 등) 가 증가하는 시대에, 비교적 시각적 정보가 적은 (흑백) 스타일로 회귀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 였을까요? 자산어보 역시 보여지는 것 보다는 보이고 싶은것에 집중하려 했던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준익감독은 흑백으로 연출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에 집중하기위해서', '조선을 흑백으로 연출한 영화가 기존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극장에서 두번째로 맞이했던 영화, 자산어보는 새롭지만 구수한 맛이었습니다.

 

변변치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